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 로 잘 알려진 일본의 인기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다섯번째 장편소설 노르웨이의 숲은 아직까지도 전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품입니다. 1987년 일본에서 발행되어 현재까지 1000만부 이상의 발행부수를 기록하여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들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2010년에는 베트남 감독인 쩐아인훙 감독에 의해 영화화 되기도 했습니다.
상실의 시대ㅣ줄거리
이야기는 독일 함부르크 공항을 떠난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나”인 화자 와타나베이며 도쿄 한 대학의 기숙사에서 생활하며 연극과에 다니고 있는 대학생입니다. 고향은 고베이며 진학을 계기로 도쿄에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어느날 주인공은 우연히 전철 안에서 나오코와 재회합니다. 두 사람은 다른 용건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전철에서 내리고 그 곳에서 나오코는 별다른 말 없이 마냥 걷기만 합니다. 오랜만에 만난 나오코는 체중이 훨씬 줄어든 것 같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라고 평가합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주인공과 나오코는 매주 만나게 됩니다. 나오코는 고베시절 주인공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습니다. 그러나 키즈키는 어느날 자동차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하게 되고 주인공과 나오코는 모두 그 일에서 벗어나 도쿄로 오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 더이상 나오코와 만날 수 없게 된 어느날 그녀로부터 한 통의 편지가 도착합니다. 그녀는 교토의 한 요양원에 들어가있었습니다. 그 시설은 한번 나가면 다시 들어갈 수 없다는 규칙이 있는 곳입니다. 나오코와 만나지 못하게 된 사이에 주인공은 미도리라는 어린 여자를 알게 됩니다. 미도리에게는 남자친구가 있고 주인공에게는 나오코가 있었지만 서로 스스럼없이 특별한 친구로써 신뢰해 갑니다.
그러다 나오코의 만나러 와달라는 편지를 받고 주인공은 교토로 갑니다. 그 요양원에서 모두에게 음악치료를 하고 있으면서도 요양원의 환자이기도 한 레이코를 만납니다. 레이코는 나오코의 룸메이트로 두 사람은 요양원에서 서로 의지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나오코는 요양원에서 매우 평온한 시간을 보내며 점차 회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 나오코와 한동안 시간을 보내다가 주인공은 다시 도쿄로 돌아갑니다. 글고 주인공은 기숙사에서 나와 혼자 살게 되고 나오코에게는 언젠가 같이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씁니다. 그는 매주 나오코에게 편지를 쓰고 나오코의 답장은 오기도 하고 안오기도 합니다.
곧 회복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오코의 회복은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정신상태가 점점 심하게 무너지고 마침내 시설에서도 나와 병원에서 집중적인 치료를 받게 됩니다. 그 사이 주인공은 미도리와의 관계가 깊어집니다. 하지만 나오코를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흔들리는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 나오코의 요양원 룸메이트였던 나오코에게 편지를 보내곤 합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에도 나오코는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그 아픔 때문에 주인공은 한달동안 방랑여행을 떠났습니다. 도쿄에 다시 주인공이 돌아온 후 나오코가 죽었을 때의 이야기를 하러 레이코씨가 시설에서 나와 주인공을 만나러 옵니다. 한번 나오면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요양원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오코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레이코였습니다.
둘은 만나 단둘이 와인을 따르고 기타도 치고 노래를 부르며 나오코를 위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그리고 나서 두 사람은 섹스를 합니다. 주인공은 미도리에게 전화를 겁니다. 미도리와 사귀고 싶다는 말을 전하는데 “지금 어디에 있니?” 라는 미도리의 물음에 “내가 지금 어디에 있지” 라고 되물으며 소설은 끝이납니다.
상실의 시대 ㅣ 등장인물
와타나베 토오루
주인공이며 이 소설의 화자입니다. 고베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사립대학 문학부 연극과에 진학했습니다. 고베에 여자친구가 있었지만 도쿄로 상경하며 헤어지게 됩니다. 대학교 1,2학년은 기숙사에서 생활했습니다. 대학생이 되어 고등학교 시절의 절친한 친구였던 키즈키의 여자친구였던 나오코를 우연히 만나 연인관계가 되지만 그녀가 요양을 위해 교토로 떠나버리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모르는 여성들과 잠자리를 하기도 합니다.
키즈키
와타나베 토오루의 친구이자 나오코의 남자친구였습니다. 나오코와는 아주 어릴때부터 소꿉친구였기 때문에 서로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할 정도로 사이가 좋았습니다. 그러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5월, 집 차고에서 배기가스를 마시고 자살합니다. 나오코와 키즈키는 모두에게 사이좋은 연인으로 알려져 있지만 와타나베는 대학생이 되어 사귀게된 나오코가 처녀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나오코
소설에서는 여주인공에 가까운 역할로 과거는 친구 키즈키의 여자친구였지만 현재는 주인공 와타나베의 여자친구입니다. 키즈키가 자살해 버린 후 조금씩 마음의 병을 앓게 되고 와타나베와 섹스 후 치료를 위해 대학을 휴학하고 치료시설인 아미료라는 요양원에 들어갑니다. 병문안을 온 와타나베와 연인관계가 됩니다.
미도리
와타나베와 같은 대학에서 같은 수업을 듣는 여성입니다. 처음 와타나베와 만났을 때는 빡빡머리였습니다. 아버지는 서점은 운영하고 있으며 딱딱하고 재미없는 남자친구가 있습니다.
레이코
아미료에서 나오코의 룸메이트입니다. 피아노를 잘 쳐서 요양원 사람들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있고 기타도 잘 칠 수 있습니다. 원래 결혼을 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이혼하고 8년간 요양원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나가사와
도쿄대학 법학부에 다니고 있는 훈훈한 외모의 남학생입니다. 사후 30년이 지나지 않은 작가의 작품은 읽지 않는다는 등 기묘한 고집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츠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지만 와타나베와 어울려 방탕한 생활을 하며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츠미
부자들의 자녀가 다니는 여대에 재학 중이며 나가사와의 여자친구입니다. 나가사와가 여러 여성과 성관계를 하고 있는 것을 알지만 묵인하고 있습니다. 결국 나가사와와 헤어지고 다른남자와 결혼하지만 끝에는 자살하고 맙니다.
<상실의 시대>에 대한 해설과 고찰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자전적 소설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은 물론 전세계적으로도 유명한 작가이며 노벨 문학상 후보에도 여러번 올랐던 인물입니다. 그의 다섯번째 장편소설로 1987년 발표된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실제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무라카미 하루키와 마찬가지로 문과대학에서 연극을 배우는 대학생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졸업한 와세다 대학을 배경으로 한 강의나 교내의 모습도 아주 세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주인공이 자주 다니던 도서관도 실제로 존재하고 있으며 노면전차의 모습 또한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일본의 관서지방에서 자랐지만 청년시절을 와세다 대학에서 보냈기 때문에 동경을 무대로 한 작품이 많습니다. 결과적으로 <노르웨이의 숲>은 그의 자전적 소설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단편소설 <반딧불이>가 원작
무라카미 하루키는 본작을 쓰기전에 <반딧불이, 헛간을 태우다 (1987)> 에서 <반딧불이>라는 작품을 먼저 발표했습니다. 이 작품에는 <노르웨이의 숲>의 전반부에서 그려지는 기숙사에서의 생활이나 전철에서 나오코와 재회하여 요츠야에서 이이다바시로 연결되는 호리단을 걷는 묘사가 동일하게 그려집니다. 단편 <반딧불이>는 노르웨의 숲 2장과 3장 내용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나 <노르웨이의 숲>에서 돌격대라는 별명이 붙었던 주인공의 기숙사 룸메이트는 <반딧불이>에서는 룸메이트 그대로이지만 친구나 애인에게도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의 매력
주인공 와타나베 토오루는 왠지 여성에게 인기가 많습니다. 특별히 와타나베가 적극적으로 작업하지 않아도 여성들이 먼저 관심을 보이고 모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미도리가 주인공에게 “얼마만큼 (내가) 좋아?” 라고 묻는 장면에서 와타나베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봄날의 곰만큼” 이런 이상한 표현으로 미도리에게 봄날의 곰에 대해 상상하게 하며 그녀에 대한 호의를 간접적으로 표현합니다.
<노르웨이의 숲>만 아니라 대부분의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여성이 주인공에게 말을 걸어오고 언젠가부터 주인공과 여성은 호감을 가지게 된다.”라는 구도가 많이 있습니다. 여성들의 접근에 대해서 주인공은 단지 수동적으로 받아들일 뿐 그녀들과 “연애”를 잘 해나가기는 어렵습니다. 주인공에게는 주체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조금전의 “봄날의 곰”과 같은 대답에서도 애매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와타나베가 여성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어딘가 풍기는 어두운 분위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주체성이 없고 어딘가 그림자가 있는듯한 분위기가 이성에게 있어서는 그냥 놔둘 수 없는 존재로 여겨지게 하는 것은 아닐지요.
나가시와의 존재
나가사와는 와타나베가 사는 기숙사의 선배로 여러가지로 여러가지로 와타나베와 얽히게 됩니다. 그는 용모단정한 도쿄대학의 법학과 학생으로 흠잡을 수 없는 완벽한 존재로도 보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츠미라는 여자친구가 있음에도 모르는 여성들과 의미없는 섹스를 반복하는 인물입니다. 하츠미는 결국 그와 헤어져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이후 자살하고 맙니다. 작품에서는 두 사람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하츠미가 왜 자살을 했는지 끝까지 알 수는 없지만 몇가지 사건으로 그 이유를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애초에 둘이 헤어진 이유는 나가사와가 하츠미를 구하기는 커녕 그녀의 병세를 악화시킨다고 이해하고 외무성에 응시함으로써 그녀를 떠나려고 합니다. 취업축하파티에서는 일부러 하츠미의 미움을 살만한 행동을 합니다. 그리고 그는 독일에 부임하게 되고 그것이 명확한 전환점이 되어 둘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츠미에게 있어서 나가사와는 현실세계와 연결되는 연결고리였던 것 같습니다. 둘이 헤어지게 됨으로써 그려는 서서히 자신만의 세계에 침식되어 결국 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나오코가 말한 우물의 의미
어느날 나오코는 갑자기 와타나베에게 우물이야기를 합니다. 와타나베는 우물이야기를 듣고나서 다음과 같이 서술합니다. “나오코가 우물이야기를 해준 후로 나는 그 우물이 없는 초원의 풍경을 기억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본 작품뿐만 아니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서 우물은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합니다. 여기에서 우물은 “삶의 세계와 죽음의 세계를 잇는 매체”로 취급됩니다. 나오코가 와타나베에게 우물 이야기를 했을 때는 이미 자신이 죽음의 문턱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로 와타나베는 우물의 모습(죽음의 세계)없이는 초원의 풍경( 삶의 세계)를 생각해낼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이 소설의 큰 기조 중 하나로 결국 죽음이 삶의 일부임을 인정하는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나오코의 자살
노르웨이의 숲에서 죽음을 상징하는 존재로 그려지는 나오코는 이야기의 초반부터 등장하지만 그 등장부터 이미 짙게 죽음을 예감하게 합니다. 실제로 나오코는 “만약 내가 깊은 구덩이에 빠지고, 그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다면…” 등 불안에 사로집할때가 있다고 와타나베에 고백합니다. 이 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는 이미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나오코는 왜 자신의 죽음을 의식하게 되었을까요? 당시 사귀던 키즈키가 죽은 후 나오코는 죽은 것처러 살아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것은 죽은 자와 산 자가 그녀 속에 혼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작품에서 유일하게 굵은 글씨로 되어있는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하고 있다”라는 노르웨이의 숲의 테마라고도 할 수 있는 이 문장은 키즈키의 죽음을 계기로 나오코 안에서 싹트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와타나베와의 재회가 그녀를 바꿔놓습니다. 처음 그녀가 와타나베를 만난 이유는 키즈키에 대한 기억을 공유하고 와타나베와 함께 있음으로 죽은 키즈키를 해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두사람의 관계는 서서히 변화를 겪게 되고 그녀의 생일날 섹스를 함으로써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여기에서 나오코는 지금까지 없었던 자의식이 발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은 불안정한 상태를 피하기 위해 요양원인 아미료에 들어가지만 결국 자살하고 맙니다.
<노르웨이의 숲>이 그리는 삶과 죽음
죽음은 삶의 대척점으로서가 아니라 그 일부로서 존재한다는 것. 상기된 것처럼 이 문장은 키즈키가 자살한 장면 직후 유일하게 이 작품에서 굵은 글씨로 쓰여져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키즈키와 나오코가 자살함으로써 와타나베에게 죽음은 인간 속에 항상 존재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갑자기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늘 존재하는 것입니다. 사실 인간은 죽음을 내포하면서 항상 존재합니다. 태어나면서 부터 죽음을 향해 살아가고 있으며 이미 죽음은 확실하게 기약되어 있는 약속인 것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친근함이 담담하게 그려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의 결말
나오코가 자살하고 와타나베는 그 슬픔을 달래기 위해 한달에 걸친 여행을 떠납니다. 여행을 마치고 그가 도쿄로 돌아오자 나오코가 죽었을 때를 이야기 하기 위해 레이코가 시설에서 나와 그를 찾아옵니다.
나오코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두 사람은 함께 나오코를 위한 조촐한 장례식을 치릅니다. 와인을 따르고 레이코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릅니다. 슬픔에 잠기기 위한 장례식이 아니라 두 사람에게 있어서는 나오코를 기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긍정적인 의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두 사람은 섹스를 합니다.
다음날 레이코는 홋카오도로 여행을 떠납니다. 그녀와 헤어진 후 와타나베가 전화를 겁니다. 그가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인지는 나오지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키즈키를 비롯해 나오코와 레이코처럼 그의 주위에서 계속해서 사람들이 떠나가고 와타나베는 또다시 고독해집니다. 그러나 인간은 삶을 혼자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함께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삶”이니까요. 깊이 사랑하고 강하게 사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는 결말입니다.
섹스의 의미
이 작품에서 와타나베는 나오코를 좋아하는 한편 나가사와와 어울려 여러 이름모를 여성들과 어울려 하룻밤을 보내곤 합니다. 독자는 소설을 읽으면서 와타나베가 정말 나오코를 사랑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게 될 수도 있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에서 섹스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 서로를 연결하고 이해하며 회복시키는 의미를 갖습니다. <무라카미 하루키, 카와아이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라는 대담집에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육체와 정신 사이에 있는 것이 섹스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여자애들하고 엄청 자고 싶어져요”라는 와타나베의 대사는 즉 “정신에 큰 타격을 입고 있어 회복이 필요하다”라는 표현으로도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목에 얽힌 이야기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은 비틀즈의 “Norwegian Wood (This Bird Has Flown)”에서 왔습니다. 소설 서두에서 공항에서 울려퍼지기도 하고 과거에는 나오코가 좋아했던 노래이며 교토의 요양소를 노르웨이의 숲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만 원제에서의 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노르웨이산 목재가구가 맞다고 합니다. 어쨌든 비틀즈의 곡 가사 속에서는 한여자와 만나고 헤어지고 떠나는 한 남자의 이야기가 그려져 있습니다. 가사에서 “좋은 방이지? 노르웨이산 목재가구야” 에서 Norwegian Wood라는 표현이 등장합니다.
한국에서는 <상실의 시대>라는 번안된 제목으로 출간되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는 무라카미 하루키와는 상관없이 상실의 시대를 출간한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이라고 합니다. 추후에는 다시 노르웨이의 숲으로 출간되기도 했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상실의 시대라는 이름이 더 익숙한 듯 합니다.
작가의 자전적 배경을 바탕으로 삶과 죽음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청춘의 모습을 담담히 그린 이야기. 상실의 시대는 노벨 문학상 후보에 오를만큼 유명작가인 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인만큼 한번쯤 읽어볼 가치가 있는 작품입니다.
덜 벌고 더 행복하기로 해보았다.
어쨌거나 보고 읽고 쓰기를 좋아함.
웹사이트 prunnnn.com 운영 중.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의 푸르른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