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사마 야요이 라는 이름을 한번쯤 들어보셨나요? 현존하고 있는 대표적인 현대미술 아티스트로서 그 작품들이 고가에 거래되면서 화제가 되며 가끔씩 뉴스에 오르내리기도 하는 이름입니다. 오늘은 쿠사마 야요이의 연대별 대표작품과 그의 예술활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유년기
쿠사마야요이는 1929년 일본 나가노현 마츠모토시의 유복한 집안의 넷째 딸로 태어납니다. 어릴때부터 정신적인 병으로 인하여 꽃에게 말을 걸거나 본인의 목소리가 개 소리로 들리는 등 환상과 환각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있어 그림을 그리는 것은 두려움을 잠재우는 수단이 되었고 어릴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신경쇠약 증이라던가 강박증이었다던지의 추측이 많습니다만 어린시절 아버지의 가정에 대한 태만과 그로 인하여어머니의 히스테릭으로 학대를 받았고 이에 의한 정신질환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오늘날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서 상징성을 나타내는 물방울은 그 환각을 통해 보였던 물방울 모양을 표현한 것이 시초가 되었습니다. 어린시절 그녀가 그린 그림에는 반점같은 물방울이 화면을 뒤덮고 있는 작품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무제 1939년 작
2. 초기 일본에서의 작품활동
학창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그림실력이 높이 평가받아 교토시립의 미술공예학교에 입학하게 됩니다. 다만 세밀한 묘사 등 정형화된 미술화법을 가르치는 교육에 질려 학교에 잘 가지 않게 됩니다. 또한 이 무렵 49년 이후부터 쿠사마 야요이는 일본화를 그만두고 감정이나 느낌을 그림으로 나타내는 추상화를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합니다.
1952년 마츠모토시 제일공민관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첫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이 개인전에서 신슈대학의 교수이자 정신과 의사인 니시마루 요카타씨가 참석하게 되고 그 후 학회에 쿠사마야요이의 작품을 대대적으로 소개하는 등 그녀가 미술 평론가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첫 개인전을 개최한 후 미술평론가의 지지를 얻어 도쿄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하여 주목을 끌게 됩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55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 18회 국제 수채화 비엔날레에 일본대표로 참석하게 되고 이 전시를 본 시애틀의 한 미술관으로부터 제의를 받아 57년에는 첫 해외 개인전이 개최되었습니다.
(좌) 잔몽 1949년 작 (우) 태양 1953년 작
3. 뉴욕에서의 전성기
이듬해인 58년부터는 유럽을 대신하여 예술의 중심지가 된 뉴욕으로 거점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미국에서의 활동이 시작됩니다. 처음에는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지만 조각가인 도널드 저지나 영상작가인 조지프 코넬 등을 알게되어 서서히 조각작품이나 설치미술을 발표하면서 주목받기 시작합니다. 쿠사마 야요이와 조지프 코넬과는 72년 조지프가 사망할때까지 연인이자 파트너로서 함께 생활합니다.
검은 바탕을 두른 거대한 캔버스에 작은 호를 여러개 그려 2M, 4M 가량의 화면을 가득채워 완성한 작품이 대표작인 무한한 그물 Infinity net 입니다. 무한한 공간을 표현한 이 작품은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세계를 잘 보여주는 것으로 물방울이나 그물모양의 표현방식은 어려서부터 자신의 질병으로 인한 고통과 두려움을 떨쳐내기 위한 시도였습니다. 현지의 평론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은 후 미국에서도 개인전을 개최하게 됩니다.
뉴욕에서의 쿠사마 야요이
Infiniti Nets Yellow 1960년작
이 시기에는 새로운 표현방식의 일환으로 평면적인 회화 뿐만 아니라 입체 작품에도 도전하게 됩니다. 의자나 테이블, 식기에 이르기까지 흰 패브릭을 설치해 덮은 작품으로 소프트 스컬프처라고도 불리는 오늘날 유명한 입체예술 섬유예술의 표현방법 중 하나입니다. 65년에는 방의 사방을 거울로 둘러싸고 바닥 일면을 소프트 스컬프처로 채운 설치미술을 발표하여 무한한 세계를 표현하는 다른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무한한 거울의 방 1965년작
베트남전을 배경으로 평화나 사랑을 호소하는 반전운동이 미국에서 큰 사회현상이 되고 있던 67년경부터 쿠사마는 독자적인 전위예술 퍼포먼스인 ‘해프닝’을 진행하게 됩니다. 그 중 유명한 것이 벌거벗은 남녀가 춤을 추는 가운데 그 몸에 물방울을 그리는 퍼포먼스입니다. 이는 생명의 원자 중 하나를 뜻하는 물방울을 그리면서 인체도 자연도 원자의 하나로 돌아가 모든 경계가 사라지고 자기가 소멸되어 우주로 돌아간다는 새로운 표현이었습니다.
쿠사마 해프닝
4. 다시 일본으로
1973년에는 오랜 연인과 아버지가 잇달아 사망하고 쿠사마 야요이 본인의 원래 앓고 있던 정신적 질병까지 겹쳐 치료를 위해 일본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병원에 입퇴원을 반복하며 안정되지 않는 시기가 계속되고 ‘해프닝’이라는 전위예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한 일본국내의 비판에 의하여 귀국 후에는 그다지 큰 활동을 하지 않고 조금씩 잊혀지는 듯 했습니다.
자살한 나 1977년 작
다만 이 시기에는 문학창작활동을 계속하여 78년에는 맨해튼 자살미수 상습범이라는 작품을 발표합니다. 이후 쿠사마 야요이는 99년까지 14권의 소설을 출간하였으며 그 중 크리스토퍼 남창굴은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학창작 부문에서도 그 재능을 높이 평가 받았습니다.
회화부문에서는 일본 귀국 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하게 된 것이 판화작품인데 물방울에 줄선 그녀의 대표작인 호박 등의 모티브의 작품도 이때부터 많이 그려지게 됩니다.
5. 다시 예술가로서 세계의 주목을 받다.
잊혀지는 듯 하던 쿠사마 야요이가 다시 세계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되는 계기가 발생합니다. 1989년 뉴욕에 새롭게 설립된 국제 현대 미술센터의 오프닝전으로 쿠사마야요이 회고전이 그것입니다. 또한 무한한 그물이 전후 미술사의 공백을 메우는 귀중한 작품임이 실증되어 다시한번 작가로서 평가받아 주목받게 됩니다. 이를 계기로 93년 국제 미술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 일본 대표작가로 선택되어 이 미술전에서 첫 일본인 여성작가로서 개인전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98년에는 로스엔젤레스, 뉴욕, 도쿄 등 개인전을 순회하면서 다시 미술의 최전선에 복귀하게 되었습니다.
Infinity Nets 1990년 작
호박 1999년 작
6. 우리의 영원한 영혼
2009년부터는 ‘우리의 영원한 영혼’이라는 제목으로 대형회화 시리즈를 지속적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2017년까지 500점 가까이 제작된 회화 시리즈는 압도적인 예술로서의 패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영혼은 쿠사마 야요이 예술의 집대성이며 계속되는 창작활동은 향후 쿠사마야요이 표현활동이 중심이 될 것입니다.
(좌) 마음 2015년 작 (우) 나에게 사랑을 더해서 2015년 작
(좌) 나는 만화가가 되고 싶다 2015년 작 (우) 사랑의 행방 2014년 작
쿠사마 야요이는 시대를 앞서가는 행위예술가였으며 당시 보수적인 성격의 본국인 일본의 예술계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주목받은 현대미술가였습니다. 일찍이 1960년대 미국에서 반전, 반자본주의를 주장하는 “쿠사마 해프닝”이라는 전위예술로 큰 예술적 족적을 남겼습니다. 이 쿠사마 해프닝은 남녀 나체의 몸에 그녀의 상징이기도 한 물방울 무늬를 그려넣거나 페인트를 뿌리는 행위예술로 게재제한이 있어 포스팅할 수 없지만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에 관심이 있으시다면 한번 찾아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https://www.phaidon.com/agenda/art/articles/2016/march/21/did-yayoi-kusama-conduct-the-first-gay-wedding/Did Yayoi Kusama conduct the first gay wedding? | art | PhaidonThis site uses cookies to provide necessary site functionality and improve your experience. By using our website, you agree to our privacy policywww.phaidon.com
그녀는 90세 가까운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정력적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2016년에는 미국 TIME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100인에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어릴때부터 가지고 있던 정신질환의 일종인 환영과 강박을 예술로 풀어냈던 예술가로써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열정적인 창작활동을 이어가고 있어 앞으로의 활동이 여전히 기대되는 쿠사마 야요이입니다.
함께 읽어볼만한 글
덜 벌고 더 행복하기로 해보았다.
어쨌거나 보고 읽고 쓰기를 좋아함.
웹사이트 prunnnn.com 운영 중.
<솔아솔아 푸르른 솔아>의 푸르른 담당.